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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A's STORY

이립(而立)은 너무 힘들어

by 루카러리 2023. 3. 8.

매일 살다보면 오래 전 기억이 문득 들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접했던 음식, 날씨, 공기 등에서 과거를 생각나게 하지 않았을까싶다. 그리고 뜬금없이 진지한 이야기를 나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지난 2010년 5월, 군생활을 하고 있던 내가 불화의 씨앗을 틔웠던 기억으로 돌아간 나. 매일 쓰던 일기장에는 지나간 옛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부터 군생활을 하며 배운 점, 비판할 점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매일 일기장을 쓰는 내가 궁금했던 탓일까.. 자리를 비운 사이 선임들이 나의 일기장을 보았고 내게 찾아온 선임들에 의한 일종의 즉결심판이 이루어졌다. 나이만 스무 한두어살 먹었지. 어른아이였던 내게 생애 처음 겪어본 일들은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고 구석으로 몰리는 듯한 기분을 강하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내 앞에 나타난 '군종병'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감옥과도 같았던 생활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군생활의 도피처와도 같았던 '군종병'의 생활은 꿈만 같았다. 주말마다 휴식을 반납하고 만난 '군종병'이라는 직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계급이 없는 편한 대화, 조리병 특기를 살린 훈련병을 위한 점심시간 준비는 봉사의 기쁨까지 내게 안겨주었다. '법사'님과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서 삶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고, 덕분에 정상적으로 군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때만해도 내게 맡겨진 일과 상황들을 보다 지혜롭게 대처할 수만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군생활보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생활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복학하자마자 맡은 과대표를 하면서 친구들과 적지 않은 마찰을 일으켰으며,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원치 않았던 부서 이동으로 인해 '번아웃 증후군'으로 시간을 허투루 쓰는 일이 잦았다. 분명 좋은 선택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좋지 못한 선택들을 한 것을 다시 비추어 보았을 때,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일까 자책하곤 했다.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남들에게 쉽게 상처를 입히던 나. 참을성은 쥐꼬리도 없었던 나... 그래서 변하고 싶었다.

'而立(이립)'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 어렸을 적부터 서른이 되면 어떤 모습을 하고, 마흔, 쉰.. 내 나이 때에는 그 나이에 걸맞는 자켓을 걸치고 있을 것이라 상상해왔다. 그러나 어떠한가? 나는 아직도 '어른아이'이다. 그래서 변하고 싶었다. 작년 말부터 참석하기 시작한 독서모임을 통해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다양한 자기계발서와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분들과의 시간을 통해 2023년은 애덤 그랜트의 책에서 보았던 'GIVER' 다시 말해,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치, '군종병' 시절 훈령병들에게 국수를 손수 대접하던 그때처럼 말이다.

다양한 모임에 자발적으로 나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고 위안을 받다보니 나는 착각을 했었다. 내가 '어른'이 된줄.. 호기롭게 'GIVER'가 되기로 한지 채 한 분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의 열정이 되려 다른 사람에게는 안좋게 보였나보다. 나 때문에 속상하다고 남긴 메시지를 보고 이틀간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주위사람들에게도 내 고민을 들려주었고 이에 답해주는 말들은 "모두가 마음이 맞을 순 없어", "그 사람을 무시해."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렇다. 쉽다. 인간관계에 있어 '남'을 하나의 틀에 재단하고 무시하는 일로 치부하고 끝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해결을 뒤로 한 채 도망친다면 영영 '어른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고민을 하던 와중, GRACE가 추천한 <새롭게 하소서-이하늬 편>을 보았다. 어렸을 적, 친구 따라 몇 번 가본 것이 전부인 내게 '간증'이라는 것은 생소하고 또 신비스러운 교회 행사와도 같았다. 그러나 영상을 보다가 현재의 내가 듣고 싶었던 위로와 공감의 말들이 많았다.

배우 '이하늬' 님이 말씀하신 일화 중 '영화 <극한직업>을 통한 배우로서의 성공'과 '아이의 임신'에 대한 이야기는 그 중 대표적이었다. 열심히 해도 안되는 일이나 상황들을 애써 신경쓰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것만 같았다. 10년간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흥행 배우의 타이틀, 노산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드라마 스케쥴을 잘 마무리하고 순산할 수 있었던 과정들 모두 하나님의 뜻 혹은 자연의 이치라고 하는 것을 보며, 내가 너무 아득바득 살지 않았나 되돌아 보았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몸소 받아들이는 내가 되도록 하자. 아파하지 말자. 슬퍼하지 말자. 그러다 보면 늦더라도 '而立(이립)'에 도달한 내가 있지 않을까?